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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Life] SERIES 10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 무엇부터 써야 할까? 편지 한 장을 시작하는 5가지 질문

가족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을 한번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해도 막상 빈 종이를 펼치면 첫 문장부터 막힐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너무 무거워지는 건 아닐지, 사랑한다는 말만 쓰기에는 부족한 것 같고, 미안했던 일까지 모두 꺼내야 하는지도 고민됩니다.

End of Life 코칭 과정의 자기성찰 자료에는 “관계 속에서 죽기 전에 꼭 해야 하거나 전해야 할 말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꿔보려고 합니다.

완벽한 마지막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에 있는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진심부터 적어보는 것.

오늘은 그 첫 문장을 시작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1. 먼저 ‘무슨 말을 쓸까’보다 ‘누구에게 쓸까’를 정합니다
  1. 좋은 말보다 함께했던 장면 하나부터 적어보세요
  1. 그 사람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써봅니다
  1. 감사·사랑·미안함·용서는 숙제가 아닙니다
  1. 다섯 줄이면 첫 편지는 충분합니다

1. 먼저 ‘무슨 말을 쓸까’보다 ‘누구에게 쓸까’를 정합니다

가족에게 남기는 글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모두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도 할 말이 있고,

자녀에게도 할 말이 있고,

형제자매나 오래된 친구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이 너무 커집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 한 사람에게만 글을 쓴다면 누구에게 쓰고 싶은가?

미국 Stanford Medicine의 Who Matters Most Letter Project도 삶을 돌아보는 첫 단계에서 중요한 사람을 먼저 떠올리도록 합니다.

그다음 소중했던 기억, 사과와 용서, 감사와 사랑, 작별과 같은 내용을 차례로 돌아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멋진 문장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이름 하나를 적어보세요.

To. __________

그것만으로 편지의 방향이 생깁니다.

2. 좋은 말보다 함께했던 장면 하나부터 적어보세요

“사랑한다.”

“고맙다.”

물론 중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편지를 쓰려 하면 이 두 문장 뒤에 무엇을 써야 할지 다시 막힐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감정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장면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Stanford의 삶 돌아보기 편지에서도 중요한 사람을 떠올린 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는 단계를 따로 둡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입니다.

이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중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무엇인가?

거창한 사건이 아니어도 됩니다.

같이 밥을 먹었던 날.

어려울 때 말없이 곁에 있어준 순간.

아이를 키우며 함께 웃었던 기억.

오래전 함께 갔던 여행.

매일 반복해서 먹던 아침 식사.

이런 장면 하나를 먼저 적습니다.

“나는 아직도 우리가 __________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이어서 묻습니다.

왜 그 장면이 아직 내 기억에 남아 있을까?

이때부터 편지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그 관계가 내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기록하는 글이 됩니다.

3. 그 사람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써봅니다

기억 하나를 적었다면 다음 질문은 조금 더 깊어집니다.

이 사람은 내 삶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무엇을 해줬는지만 적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있어서 어려울 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
“네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웠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내게는 참 소중했어.”

이 문장들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정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가족이었어’처럼 평가하는 것보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적는 것입니다.

완화의료 영역의 Dignity Therapy에서는 삶의 중요한 기억, 배운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희망 등을 대화한 뒤 하나의 ‘legacy document’, 즉 남길 기록으로 정리합니다. 연구에서는 이런 기록을 만드는 과정이 의미와 세대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감각과 관련될 가능성이 관찰됐습니다. 다만 모든 심리적 고통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일관되게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편지를 쓰면 마음이 치유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치료나 숙제로 보기보다,

“내가 이 관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남겨두는 기록”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4. 감사·사랑·미안함·용서는 숙제가 아닙니다

End of Life와 관계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완화의료 의사 Ira Byock은 《The Four Things That Matter Most》에서 관계에서 중요한 네 표현으로 용서를 구하기, 용서하기, 감사하기,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제시합니다.

Stanford의 Who Matters Most Letter는 여기서 더 넓게,

중요한 사람 인정하기,

소중한 기억 돌아보기,

사과하기,

용서하기,

감사하기,

사랑 표현하기,

작별하기

라는 일곱 가지 삶 돌아보기 과제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일곱 가지를 모두 써야 좋은 편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Stanford도 불편한 항목은 생략할 수 있으며, 특히 ‘작별’이 불편하다면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고 설명합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가 큰 관계에서 억지로 용서해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Ira Byock 역시 네 문장을 말한다고 모든 관계가 자동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상황과 관계, 시기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접근해보세요.

지금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말 하나만 고릅니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
네게 꼭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

혹은 아직 아무 말도 고르지 못했다면,

“아직 이 부분은 더 생각해보고 싶다.”

라고 적어도 됩니다.

5. 다섯 줄이면 첫 편지는 충분합니다

이제 실제로 써보겠습니다.

긴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노트 한 장에 다섯 줄만 적습니다.

1. 누구에게

내가 지금 이 말을 가장 전하고 싶은 사람은 __________이다.

2. 기억

그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__________이다.

3. 의미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중요한 이유는 __________이다.

4. 지금 꼭 전하고 싶은 말

나는 당신에게 __________라고 말하고 싶다.

5. 마지막 한 문장

앞으로도 꼭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__________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딸에게.

기억

어릴 때 둘이 손을 잡고 학교에 가던 아침.

의미

너를 키우는 동안 나도 부모로서 많은 것을 배우며 자랐다는 것.

지금 전하고 싶은 말

내 딸로 와줘서 고맙다는 것.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말

엄마가 네 삶의 선택을 항상 똑같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네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는 것.

이 예시는 실제 사용자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성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장을 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읽는 사람이

“이 말은 분명 이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담는 것입니다.

편지는 꼭 죽은 뒤에만 전달해야 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Stanford Letter Project는 건강할 때 작성하는 편지와 심각한 질병이 있을 때 작성하는 편지를 모두 제시하며, 작성자가 원하면 지금 가족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전달할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기록을 마친 뒤 하나를 더 결정해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전하고 싶은가?
아니면 지금은 기록만 해두고 싶은가?

때로는 편지를 남기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동안 직접 한마디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편지를 봉투에 넣기 전에 전화할 수도 있습니다.

“고마워.”

그 한마디면 충분할 때도 있습니다.

마무리 — 가족에게 남는 것은 완벽한 문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가족에게 남길 말을 기록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인생 전체를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가족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와 사랑, 미안함과 용서를 모두 적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장면.

한 가지 의미.

그리고 지금 가장 전하고 싶은 한 문장.

거기서 시작하면 됩니다.

End of Life 코칭 자료에서 “관계 속에서 아직 해야 하거나 전해야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묻는 이유도 결국 그 질문을 미래의 어느 날에만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아래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당신에게 꼭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 문장은,

당신만 쓸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가족에게 남기는 편지는 꼭 길게 써야 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람을 정하고, 기억 하나와 그 사람의 의미, 지금 전하고 싶은 한 문장 정도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Q2. 미안하거나 용서해야 할 이야기를 꼭 써야 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계의 상황에 따라 불편하거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내용은 쓰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깊은 상처가 있는 관계에 일률적으로 화해나 용서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Q3. 지금 가족에게 보여줘도 될까요?

작성자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달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다듬거나 보관해둘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지금 직접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대화로 먼저 전할 수도 있습니다.

Q4. 이 편지가 유언장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대신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가족에게 남기는 개인적인 편지는 자신의 관계와 마음을 기록하는 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법적 효력을 갖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본인이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설명을 듣고 직접 작성·등록하는 별도의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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