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고, 내 생각도 기록해야 할 것 같고, 의료나 장례, 재산에 관한 것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떠오르면 결국 이런 생각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시간 날 때 제대로 해야지.”
그런데 End of Life에 관한 준비는 꼭 한 번에 완성해야 하는 숙제일까요?
관련 연구와 전문기관 자료를 살펴보면 오히려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 가깝다는 관점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오늘은 준비를 미루지 않으면서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한 번에 끝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준비를 ‘완료해야 할 목록’으로 보면 시작하기 어려워집니다
사람마다 준비되는 영역과 속도는 다릅니다
지금의 생각이 나중에 달라져도 괜찮습니다
가족과의 대화도 한 번에 끝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한 단계만 준비해보세요
1. 준비를 ‘완료해야 할 목록’으로 보면 시작하기 어려워집니다
남은 삶을 준비한다고 하면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을 정리하는 것.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
기록을 남기는 것.
의료에 관한 생각을 확인하는 것.
장례나 재산과 관련해 알아볼 것.
이것을 하나의 거대한 체크리스트로 만들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수 있습니다.
의료적 미래 계획을 다루는 Advance Care Planning 연구에서는 이를 한 번 작성하고 끝내는 문서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 삶의 목표, 미래 의료에 관한 선호를 이해하고 공유해가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PubMed)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5개 지역 전문가들의 합의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가치와 목표를 확인하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료진과 이야기하며, 필요한 경우 그 내용을 기록하고 다시 검토하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PubMed)
여기서 중요한 것은 ACP와 남은 삶 준비가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의 힌트는 얻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준비일수록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내기보다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End of Life 코칭 과정에서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어떻게 죽고 싶은가’, ‘누가 곁에 있기를 원하는가’처럼 먼저 자신의 가치와 바람을 알아보는 질문을 다룹니다.
그래서 첫날부터 모든 답을 완성하려 하기보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 생각 하나만 알아보자.
2. 사람마다 준비되는 영역과 속도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에 관한 선택은 아직 생각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관련 서류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가족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즉, 준비는 모든 영역에서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Advance Care Planning의 준비도를 연구한 논문에서도 행동에 따라 사람들의 준비 단계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가족과 이야기할 준비 정도와 의사에게 이야기할 준비 정도, 서류를 작성할 준비 정도가 서로 같지 않았습니다. (PubMed)
2024년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ACP 행동에 대한 준비 단계가 사람과 행동 유형에 따라 폭넓게 달랐습니다. (PubMed)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미 준비했다고 해서 나도 같은 순서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내가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노트에 한 줄 적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서류를 알아보기 전에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미 생각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가족과 이야기할 때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가능한 곳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3. 지금의 생각이 나중에 달라져도 괜찮습니다
준비를 어렵게 만드는 생각 중 하나가 있습니다.
“한번 정하면 나중에도 그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삶은 변합니다.
건강이 달라질 수 있고,
가족 관계가 달라질 수 있고,
살고 있는 곳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 National Institute on Aging은 Advance Directive를 한 번 작성하고 끝내는 고정된 문서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living documents’로 설명하며, 주요한 삶의 변화가 있을 때 업데이트할 것을 안내합니다. (NIA)
우리나라 제도도 마찬가지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이미 작성했더라도 본인은 언제든지 자신의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정부통계포털)
물론 이것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특정 법적 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남은 삶을 돌아보는 데도 참고할 만한 관점이 있습니다.
현재의 답이 영원한 답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에는 건강이나 돌봄, 독립적인 생활이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서 이전의 준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때의 나에게 중요한 것을 기록했고,
지금의 나에게 다시 묻는 것입니다.
4. 가족과의 대화도 한 번에 끝낼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과 삶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큰 대화를 준비해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족을 모두 모으고,
필요한 내용을 모두 설명하고,
그날 결론까지 내려야 할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Institute for Healthcare Improvement의 The Conversation Project는 첫 대화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거나 모든 사람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안내합니다.